이른둥이 하은이네 문이 열렸다. 집 안을 가득 메운 동요소리며, 거실바닥에 깔린 두꺼운 매트. 영락없는 ‘아이 많은 집’이었다.
“우리 애들 나이요? 7, 5, 4, 3... 이렇게 안 외우면 헛갈려요. 하하하
아빠 송하성씨, 해마다 자식들 나이 외우는 것도 일이란다. 의젓한 첫째오빠 이노, 정 많은 둘째오빠 주노, 이른둥이 하은이가 셋째, 그리고 귀여운 질투쟁이 막내 예은이까지. 올망졸망 네 남매 키우기? 결코 만만치 않다.
“다들 우리 집만 왔다 가면 정신이 쏙 빠진대요.”라는 엄마 김지은씨.
 그렇다. 사실 인터뷰도 쉽진 않았다. 막둥이 밥이라도 먹이려면 둘째도 덩달아 밥을 찾고, 또 저쪽에선 하은이가 엄마를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엄마의 일상. 네 남매는 저마다 엄마 아빠 관심을 사기위해 고군분투다. 하다못해 감기조차 줄줄이 걸린다고. 아주 사이좋게...



“남들 말대로 하면 무분별하게 낳은 거죠, 대책없이... 하하하”

고물가 저출산 시대, ‘네 남매를 어떻게 키울거냐’는 주변의 걱정도 참 많이 들었다. 사실 둘째를 갖기 무섭게, 양가 어른들도 쐐기를 박았다. 더 이상은 낳지 말라고... 그러다보니 셋째 하은이를 가졌을 땐, 말 꺼내기도 힘들었다. 임신 5개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사실을 알렸다고. 그러고는 한 달 만에 아이를 낳은 것이다. 임신 21주.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임산부 요실금인가 싶어 병원에 갔는데, 양수가 터졌다는 거예요.” 2주, 아니 며칠만이라도 더 버텨보려 했지만 그 날 밤, 하은이가 태어났다.

“몸무게가 1.04kg... 마트에 파는 설탕 1kg이 떠오르는데, 상상이 안 되는거에요"


“아이 낳고 밥을 먹으려는데, 숟가락이 반짝이면서 제 얼굴이 보이는 거예요. 순간 긴 터널에서 빠져나온 느낌이랄까? 차마 밥을 못 먹겠더라고요. 그 순간에도 아이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홀로 싸우고 있을 거 아니에요.” 아이를 낳고 ‘살았다’고 생각한 자신이 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는 엄마. 처음 만난 하은이, 인큐베이터 속 하은이는 마치 아기 새 같았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1.04kg 작은 몸으로 힘겹게 버티기를 한 달, 하은이에게도 후유증이 왔다. 미숙아 망막증과 뇌출혈. 원인은 ‘산소과다 공급으로 인한 과호흡’, 인큐베이터 부작용이라고 했다. 눈 수술만 세 번을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시각장애 2급. 뱅글뱅글 돌아가는 특수 안경을 써야 희미하게나마 가까운 곳이라도 볼 수 있다. 또한 뇌출혈로 ‘뇌성마비 1급’의 장애가 남았다.

"사실 온 종일 하은이에게만 매달려있어도 모자라요.”

일주일에 두 번씩 물리치료, 언어치료, 음악치료를 번갈아가며 받고, 하은이는 특수아동 어린이 집에 간다. 집에 와도 할 일은 산더미. 눈 대신, 감각으로 사물을 익히도록 과일이며 채소같은 생물로 인지능력을 키워줘야 하고~ 움직임이 힘든 아이에게 마사지와 스트레칭은 해주면 해줄수록 좋다. 그러나 하은이만 바라볼 수 없는 상황. “가끔 생각해요. 아이가 하나라면 온갖 에너지를 그 아이에게 다 쏟을 수 있을텐데... 미안할 때도 많죠.” 하은이 뿐만 아니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갈 첫째의 한글공부며, 아토피로 고생하는 둘째, 한참 엄마 품이 필요할 20개월 막내까지. 어느 하나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은 아이가 없으니... 아무리 골고루 챙겨주고 안아줘도 엄마는 늘 부족한 느낌이다. 하지만 자식농사 많이 지은 것, 후회는 없다. 특히 장애가 있는 하은이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오히려 장애아에게, 형제 자매가 더 필요한 것 같아요.”

시각장애가 있는 하은이의 청각은 무척 예민하다. 엄마 휴대전화 벨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도, 노래만 나오면 신나게 따라 부르는 것도 하은이. 심지어 옆방에서 오빠들과 동생 노는 소리를 듣고 킥킥 웃는다. 그리고 크게 소리친다. '이노야~ 안아줘!' 그러면 큰오빠 이노가 달려와 자신들이 있는 공간으로 하은이를 데려가곤 한다고. 쉴새 없이 떠드는 오빠 동생의 이야기 속에서 자란 덕분일까? 뇌성마비 1급, 하은이는 인지력이 떨어지는 것에 비해 언어능력은 월등하다. 또래보다 6개월 뒤쳐진 정도일 뿐. 유독 큰오빠를 따르다보니, 저보다 4살 많은 오빠 말투도 그대로 따라하곤 한다는 것이다.

“하은이 장애는, 오빠랑 동생이 더 잘 알아요. ”

‘아이가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하은이에게 장애가 생기고, 엄마 아빠가 가장 걱정한 부분이다. 남들이 자신을 ‘다르게’ 본다는 것을 느낄 때가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오빠와 동생이라도 자신의 장애를 덤덤하게 대하면,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오빠와 동생에게 먼저 설명을 해줬다. 하은이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장애인’이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중에 우리가 없어도 아이들이 하은이를 챙겨주지 않을까요. 사실 부모 욕심이죠. 그랬으면 좋겠다는...”

하은이네 집을 나설 무렵이었다. 20개월 막내가 뒤뚱뒤뚱 걸어간다. 도착한 곳은 언니 하은이가 앉은 보조의자 앞. 쥐었던 고사리 손을 쫘악~ 펴니, ‘툭’하고 초콜릿이 떨어진다. 앞으로 그 손엔, 어떤 것들이 들려질까? 이 가족의 10년 후가, 문득 궁금해졌다.

글. 사진|김현정 자유기고가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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