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스런 세상, 어떻게 희망을 품었을까

서예린 이른둥이 이야기


 

             ⓒ 아름다운재단

 

‘이 세상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예린이가 태어난 이후, 무시로 흘러나오는 이 예상치 못한 탄식에 황수미 씨는 좌절했다. 뭣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지? 내가 뭘 잘못을 한 건가, 라며 스스로를 다그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녀는 특별할 것도 없고 크게 모자랄 것도 없는 서른 해를 보내다 결혼한 이듬해인 2010년에 예린이를 가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떤 일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몰랐다. 서른이 넘어 맞이한 낯선 결혼 생활, 더불어 사느라 빚어낸 불협화음에 간혹 일상이 삐걱거리긴 했어도 적응하려고 애쓰는 와중이었다. 임신! 나름의 미래를 구상하며 ‘즐거운 우리 집’을 꿈꾸던 터라 기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예린이의 등장은 그녀의 삶을 뒤흔들었다. 평균값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정상 분포 속에 존재하기를 바라던 그녀의 일상은 무참히 깨졌다. 


“9개월 만에 태어난 예린이, 묘성증후군이에요. 지적장애 1급인데 IQ가 35 이하, 1세 수준이인 거죠. 물론 뇌병변 아이들 보면 우리 예린이는 괜찮구나 싶어요. 그러다가도 일반 친구들 만나면 머릿속이 엉클어져요. 아이와 교감하며 보편적인 발달을 지켜보면서 ‘아, 정말 다른 세상이다’ 생각하죠.”

 

낮병동, 예린이 모녀를 치유하다

 

                     ⓒ 아름다운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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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숨을 겨우 뱉은 2.5kg 예린이는 9개월 만에 세상에 등장했다. 약간의 탈장과 작은 머리가 마음에 걸렸지만 병원에서는 별일 없을 거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남편 역시도 오랜 기다림 끝에 안은 생명이라 그쯤이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사실 살아 있어서 다행이고 그것만으로도 기뻤다. 한데 3일 후 상황이 달라졌다. 예린이에게 문제가 생겼고 걱정 말라던 의사는 다급히 3차 병원을 권했다.


“5번 염색체 이상으로 생기는 묘성증후군이란 병, 들어보셨어요? 50,000명 중 1명꼴로 발생한다는데 그게 우리 예린이라니. 의사조차도 처음이라고 말하며 좀 더 지켜보자는데 그냥 죽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삼키고 빠는 능력이 저하되고 먹는 데 문제가 생기며 발육이 부진할뿐더러 인지, 언어, 운동능력이 심각하게 지체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눈앞이 캄캄했다. 인터넷 웬 블로그엔 서른을 못 넘길 수 있다고도 했다. 슬프고 마음 아프기보단 무서웠다.


“예린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인정을 못하겠더라고요. 내가 낳았고 귀한 생명이니까 안아주고 예뻐해야 되는데 마음이 안 열렸어요. 우유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고 할 건 다 하는데 아기한테 웃어주지를 못했죠. 웃어도 웃는 게 아니라는 게 뭔지 알겠더라고요. 그땐 평범하지 않은 세상, 남들과 다른 세상을 살아갈 의지가 없었어요, 살기 싫었어요.”


차를 보면 뛰어들어 부딪치고 싶고 산을 보면 올라가서 뛰어내리고 싶고 바다를 보면 빠져 죽고 싶은 충동이 황수미 씨를 괴롭혔다. 삶이 지옥인데도 아이가 백일이 될 때까지 시댁과 친정 어디에도 말하지 못했다. 누구에게라도 속 시원히 말할 수 있었다면 조금 나았을지도 모르는데 그저 남편과 함께 감당해내느라 진을 뺐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부부가 감당하기엔 모든 것이 너무 갑작스러웠다.


밖을 보고 미래를 그릴수록 답답하고 우울했다. 예린이와 웃으며 마주하기도 힘들었다. 같이 죽을까, 더 잘 길러줄 수 있는 사람에게 입양 보낼까…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그러다 부산 메드윌병원 낮병동과 인연이 닿았다.

 

처음에는 예린이를 위해 재활 교육이 가능해서 기뻤으나 이내 황수미 씨는 이곳이 자신에게 꼭 필요한 병원임을 알아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고통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친정엄마나 언니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마음을 같은 병동의 엄마들이 이해하고 다독여줬다.


“신기하죠. 예린이를 받아들이지 못해 웃지도 못했는데 낮병동을 다니면서 다른 아이에게 웃어주더라고요, 제가. 내가 왜 이런 무리에 있어야 하나 싶어서 다른 엄마들하고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느 새 그들과 이야기하며 위로받고 있고. 동질감과 공감만한 힘이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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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마음 문의 빗장을 열다


낮병동 생활을 하면서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재활 치료비 지원도 알게 됐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편안해진 마음이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치료비로 인해 한결 더 따뜻해졌다. 황수미 씨에게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예전에는 친구들이고 뭐고 다 연락 끊고 보기 싫었죠. 하필 나에게 닥친 이 일이 너무 화났으니까요. 뭘 하더라도 극단적인 생각만 했어요. 나쁜 생각도 참 많이 했죠. 나만 불행하고 사람들은 들어줄 생각도 안 한다고 느끼고. 그런데 낮병동을 다니며 말 그대로 ‘소통’하면서 내 스스로 문을 닫았다는 걸 알았어요.”


그 순간 굳게 닫았던 예린이에 대한 마음이 열렸다. 미소 대장 예린이가 유독 엄마 황수미 씨 앞에서만 무표정인 이유가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억지로라도 웃자, 미래가 어둑하면 오늘만 생각하자, 마음을 다잡으며 힘을 내기 시작했다. 혼자 상상했던 나쁜 결말보다 치료사와 복지사를 통해 보다 객관적이고 열린 결과를 쥐었다. 현재 일어난 상황을 외면하기보다 적극적인 치료 방법을 찾아 나섰다.


“희귀 등록으로 산전 특례가 있어도 혜택 받을 수 없었던 언어 치료가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지원으로 가능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언어 치료라서 그렇기도 하고 그냥 이 모든 게 소통을 위한 치료라는 생각도 들고요. 사람과 사람이 닿아야 가능한 것들, 그저 고마울 뿐이죠.”


솔직히 황수미 씨는 자신과 예린이의 고생스러움을 인터뷰하는 게 그리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좀 더 강해져야 예린이가 세상으로 나갈 때 좀 더 수월하겠다 싶었다. 엄마를 뒷심 삼아 첩첩이 버티고 선 투명한 벽을 뚫고 그 구멍을 통로 삼아 대화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 그래서 부대끼는 과거를 하나둘 꺼내 담담이 내보였다. 불신이 닫아버린 마음을 신뢰가 열고 마는 신기한 순간도 부록으로 딸려왔다. 그러는 사이 무시로 흘러나오던 그녀의 탄식, 어쩌면 갑작스런 재난에 빠진 누구나의 탄식이 재구성됐다.


‘어제와 다르고 저기와 다른 세상이어서 희망이 있다. 지금 이 순간, 아이의 눈을 보고 무엇도 단정하지 말자.’

 

 

                                 ⓒ 아름다운재단

 

글 우승연 사진 정김신호

 

*서예린 이른둥이는 2012년에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를 통해 재활치료비를 지원받았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은 교보생명과 함께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기금을 토대로 '2.5kg 미만 또는 37주 미만으로 태어난 이른둥이 입원치료비 및 재활치료비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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