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미등록 이주노동자 부부의 이른둥이
어디에도 불법인 생명은 없다

 

다른 나라에 불법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불법체류(不法滯留, illegal stay)’다. 일반적으로 체류국의 출입국관계법령을 위반하면서, 자국 이외의 외국에서 체류하는 미등록 상태의 이방인에게 따라붙는 꼬리표다.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 정책본부가 발표한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에 따르면 우리나라 ‘미등록 외국인’은 모두 18만794명(2012년 11월 기준).

 

이는 총 외국인 체류자의 12.7%이며, 여기에는 2만 여명의 19세 미만 아동도 포함돼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우리나라가 채택한 ‘출생 시 부모의 국적에 따라서 국적을 결정하는 속인주의(屬人主義)’ 때문이다. 부모의 불법체류, 법적인 미등록 상태는 DNA처럼 아이에게 대물림된다. 마리아(가명)와 이든(가명) 부부의 이른둥이 에단(가명)도 그 중 하나다.

 

혹한의 타지에서 태어난 불법체류자의 이른둥이


 

                                   2.15kg의 작은 몸으로 태어난 에단. ⓒ 아름다운재단

 

“에단이 태어난 지 33일 지났어요. 7개월 만에 나왔는데도 많이 건강해졌죠. 처음엔 2150g이었는데 지금은 2420g이에요.”


마리아 품에 안겨 우유를 먹는 작은 아이 에단은 지난해 12월 23일에 태어났다. 예상보다 3개월이나 앞선 출산이었다. 이미 네 명의 아이를 순산했던 경험이 있던 마리아와 이든 부부에게 에단의 이른 출현은 당혹스러움이었다.


“사실 6개월까지도 임신 사실을 몰랐어요. 적은 양이지만 매월 생리도 했거든요. 아이가 움직이지도 않았고요. 물론 임신 계획도 없었죠. 한데 어느 날 조금 이상해서 병원에 갔는데 임신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다음 달에 바로 아기가 나온 거예요.”


예상치 못한 일이라, 한파에 꽁꽁 언 길 한복판에서 다급히 택시를 잡으면서도 불안을 감출 수 없었다. 수년 동안 ‘불법체류자’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면서도 스미지 않던 불안이었다. 이미 ‘단속에 걸려 추방당하면 어떡하지’라는 오랜 두려움 따윈 사라지고 없었다. 그 순간 중요한 건 오로지 생명이었다. 뱃속에서 태동도 하지 않던, 제 숨소리가 부모의 발목을 잡을까봐 애써 참아온 작은 영혼을 살리겠다는 일념밖에는 없었다.

 

                                   '불법체류'라는 두려움도 아이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을 앞서지 못했다.

                                            ⓒ 아름다운재단


“도티기념병원이라고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무료 병원을 찾아갔는데 인큐베이터 시설이 없었어요. 아기가 일찍 나오는 거라 그곳에서 받아줄 수 없다고 했죠. 적십자병원도 마찬가지였어요. 불법체류자를 받아주는 병원보다 아기를 위한 곳이 필요했어요.”


평소 도움을 주던 한국 지인이 달려오고 있었지만 그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아기가 쑤욱 머리를 내밀 듯했다. 이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힘이 된 건 생면부지의 택시기사였다. 그는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은 마리아와 이든을 대신해서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인큐베이터가 있는 병원을 알아봐줬다. 다행히 강북삼성병원에서 그들 부부를 받아주겠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에단이 안착한 인큐베이터. 그것은 아기 예수의 마구간을 연상시켰다. 그도 그럴 것이 에단은 혹한의 타지에서 태어난 불법체류자 부부의 이른둥이였다. 

 

인큐베이터에서 ‘현재의 삶’을 선물하다


필리핀 출신의 뮤지션, 마리아와 이든 부부는 1997년에 한국으로 건너왔다. 3년짜리 E-6 외국인 연예비자를 품고 용산, 오산, 의정부 등지의 미국 부대에서 공연했다. 이든의 연주에 맞춰 마리아가 노래를 불렀는데 반응이 꽤 좋았다. 이대로라면 필리핀에 있는 세 명의 아이들을 돈 걱정 없이 가르칠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운이 나빴다. 철석같이 믿었던 프로모션 회사가 그들을 속였고 결국 빈털터리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돌아갔지만 여전히 먹고 살 길이 없었어요. 그래서 2006년에 다시 왔고 그때부터 불법체류 중이에요. 7년째인데 잡히는 게 가장 두려워요. 잡히면 무조건 필리핀으로 돌아가야 하니까요, 다시는 한국에 들어올 수 없는데 필리핀에서는 할 일이 없거든요. 아이들을 가르치기는커녕 먹고 살 수도 없어요.”


부부는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겨두고 월급의 대부분을 필리핀으로 보냈다. 140만 원의 월급에서 월세 20만 원(보증금 100만 원)과 공과금, 부식비를 제외한 전부를 아이들에게 투자하는 셈. 무시로 찾아오는 ‘불법체류자’라는 불안한 꼬리표도 아이들의 장밋빛 미래를 생각하며 견뎌냈다. 한데 에단을 출산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아기 낳을 때 이미 4백만 원이 들었고 인큐베이터에 있으니까 또 엄청나게 많은 비용이 나왔어요. 당시에는 백만 원밖에 없던 상황이었는데 그때 한국인 지인과 사회복지사가 도와줘서 겨우 해결했어요. 아름다운재단도 그때 알게 됐어요. 정말 고맙게 생각해요.”

 

                에단을 보며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마리아와 이든은 한국에서의 삶을 버텨가고 있다.ⓒ 아름다운재단


                     에단에게 에드워드증후군이란 진단이 내려졌다.  2개여야 할 18번 염색체가 3개여서 발생하는 이 선천적

                     질환은 대부분 출생 후 10주 이내에 사망에 이른다고 했다. ⓒ 아름다운재단

 

낯선 나라에서 숨어 지낼 때는, 돈을 벌기 위해 이쯤은 참아내겠다고 생각할 때는 몰랐던 세상이 에단을 통해 다가왔다. 더불어 사는 것이 무언지 되뇌었다. 무엇보다 더 멀리 더 나은 미래보다 소중한 이 순간의 삶이 그리웠다. 세상 어디에도 불법(체류)인 생명은 없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에단이 건강하게 퇴원할 수만 있다면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겠다고, 필리핀의 아이들과 또 다른 일상을 꾸리겠다고 말이다.


바로 그때 에단에게 에드워드증후군(Edwards syndrome)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2개여야 할 18번 염색체가 3개여서 발생하는 이 선천적 질환은 대부분 출생 후 10주 이내에 사망에 이른다고 했다. 만약 생존한다고 해도 심각한 기형과 정신 지체 장애를 갖질 뿐더러 심장과 신장이 제대로 자라지 않아 숨 쉬고 먹기도 힘드니 아기를 위해 결단을 내려야할 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하지만 마리아와 에단 부부는 단호하고도 담담하게 아기의 생명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신이 주신 이 귀한 생명, 살아보려고 이토록 애쓰는 에단의 고군분투를 응원하고 지지하겠다고 덧붙였다.


“에드워드증후군에 대해서 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에단이 이렇게나 치열하게 살아보려고 노력하잖아요. 우리는 그저 아기를 믿고 기도할 뿐이에요. 우리를 도와주신 분들도 같은 마음일 거예요. 빨리 낫기를, 그래서 필리핀으로 돌아가 다른 형제들과 함께 건강하게 자라주기를 바라고 있어요. 함께 기도해주세요, 에단의 삶을요.”

 

                 마리아와 이든은 에단을 위해 많은 사람들의 기도를 바란다고 전했다. ⓒ 아름다운재단

 

*에단은 2012년 1월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를 통해 초기입원치료비를 지원받았습니다.

 

글. 우승연 /사진.정김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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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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