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빈

 

경험은 타인을 이해하는 매우 좋은 도구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할 수 없어 읽지 못한 누군가의 속내를 유사한 경험을 통해 이해하게 되는 까닭이다. 물론 ‘나만 이런 일을 겪는구나’, ‘이 세상에 나만큼 불행한 사람이 또 있을까’, ‘이 고통은 누구도 모를 거야’라는 폐쇄적인 마음으로는 불가능하다. 경험을 훈장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인식의 확장을 가질 수 없다. 경험으로 이제까지의 자신을 성찰할 수 있고, 그로써 비슷한 순간을 경험했던 이들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만이 더 넓고 깊은 관계를 맺는다. 오세빈 아가의 부모, 오성민&신상미 부부가 ‘다솜이 작은 숨결 살리기’의 돌잔치 기부를 선택하게 된 건 그런 맥락에서다.

 

작은 공주의 이른 세상 경험
“세빈이 이름으로 기부를 하고 싶었어요. 힘겹게 여기까지 걸어와 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축하를 담고 싶었거든요.


오성민&신상미 부부가 하나뿐인 딸 세빈이의 돌을 맞이해 기부를 떠올린 건 어쩌면 그들 세 가족이 함께 겪은 1년에 대한 보상일지도 몰랐다. 아주 친한 지인 외에는 알지 못했던 그들만의 비밀 아닌 비밀이 꽃피운 열매라고나 할까.


“우리 세빈이가 이른둥이에요. 8개월 만에 태어나 40여일을 인큐베이터에서 지냈어요. 음, 아직도 그날을 잊을 수가 없는데 진료 받으러 갔다가 아내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바로 수술에 들어갔어요. 그땐 정말 캄캄했어요. 아내도 아기도 위험한 상태라서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지낸 그 하루가 제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예요.”


청천벽력 같던 2011년 4월 20일. 그 순간 오성민 씨에게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났다. 중앙아시아에 화장품을 유통, 판매하는 (주)바자크 코리아 대표라는 직함 때문에 그간 돌보지 못했던 아내와 태아에 대한 죄책감이 엄습했다.


“세빈이 할아버지, 할머니께도 오시지 말라고 했죠. 그만큼 위험했어요. 다행히 수술이 잘 끝나고 아내는 건강을 회복했는데 세빈이는 그렇지 못했어요. 태어나자마자 호흡을 하지 않아 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죠. 아내가 아기를 봤느냐고 묻는데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머리숱이 많다고. 슬프고 아픈 시간이었어요.”


인큐베이터에서 새근새근 잠든 태어난 세빈이는 1.58kg의 작디작은 공주였다. 아직 폐가 성숙하지 않아 산소 호흡기를 달고 팔과 허벅지에 주사바늘을 꽂은 모습은 차마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안쓰러웠다. 태어나기만 하면 뭐든 다 해주리라고 생각했건만 아빠로서 해줄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인큐베이터 밖에서 세빈이의 힘겨운 사투를 지켜보는 것 외에는.

 

“되짚어보니 그때까지는 아빠가 된다는 게 뭔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더라고요. 아빠가 될 준비가 안 돼 있었던 거죠. 한데 세빈이가 생긴 이후로 좀 달라졌어요. 조그만 몸으로 삶을 향해 한 발짝씩 움직이는 세빈이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건 진짜 아빠가 되는 거였어요.”

 

세빈이의 40일 동안의 사투
세빈이를 8개월 동안 품고 있던 신상미 씨의 마음은 더욱 무거웠다. 결혼 후 사업으로 바쁜 남편 때문에 혼자 있는 날이 많았고 싸움도 잦았었다. 그러한 일상을 한 방에 바꿔버린 게 세빈이었다. 임신 후 그들 부부는 서로를 다르게 바라봤다. 고단한 삶의 흔들리는 관계를 단단히 붙잡아 준 이가 세빈이었다.


“임신중독 때문에 세빈이가 일찍 나와야 한다니까 미안했어요. 내 탓인가 싶어서. 한데 제 몸조리 때문에 병원에도 자주 갈 수 없고 속상하더라고요. 할 수 있는 건 모유를 젖병에 담아 세빈이에게 보내주는 것뿐이더라고요.”


존재만으로도 고마웠던 세빈이를 위해 밤새 모유를 짜고 남편에게 들려보낸 뒤 그날의 사진을 기다렸다. 남편이 찍어온 작은 세빈이를 보는 게 하루하루의 낙이었다. 간혹 배냇짓을 하고 눈을 뜨고 웃음을 보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항상 세빈이와 함께 있던 신상미 씨에게 40일은 지난 8달보다 길었다.


“병원 면회 시간이 12시부터 12시 30분이잖아요. 그 30분 동안 세빈이에게 말을 해주는 거예요.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너를 지켜보는 아빠가 여기 있다는 걸,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는 걸 알아주기 바랐어요. 그 40일 동안엔 점심도 걸렀죠.”


엄마 뱃속에서 8개월을 지냈다면 세빈이는 인큐베이터에서 있는 40일 동안 아빠 오성민 씨 뱃속에서 지낸 거나 다름없었다. 아기와 함께 웃고 울고 먹으며 오성민 씨는 생명의 소중함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더불어 세빈이와 함께 병실을 쓰던 다른 이른둥이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다솜이 작은 숨결 살리기의 기부가 움트는 순간이었다.

 

반갑게 받고 기쁘게 돌려주다


 

                                                                                                                                   ⓒ 오세빈

 

“정말 열심히 치료받고 40일 만에 2kg이 돼서 퇴원을 했어요. 그리고 1년 동안 감기도 안 걸렸죠. 한데 다들 우리 세빈이 같진 않았어요. 어떤 아기는 거기서 백일잔치를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아기는 엄마만 매일 오고…. 가장 가슴 아팠던 건 누구도 찾아오지 않고 중간결산 봉투만 쌓이는 아기였어요. 아, 돈 때문에 오지 못하는 부모가 있겠구나, 라고 처음 생각했죠.”


신상미 씨는 그때 그저 세빈이의 건강만을 걱정하는 것도 행복이란 걸 깨달았다. 그러자 병원비로 고통 받는 이른둥이 부모들이 눈에 들어왔다. 돌잔치 기부를 생각했을 때 두 부부가 이른둥이를 떠올린 건 그런 맥락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직접적인 도움은 아니었지만 국가에서 이른둥이 치료비를 많이 부담해줬어요. 그것도 받은 거고 건강을 회복한 것도 받은 거죠. 이렇게나 많이 받았는데 꼭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직원들까지 동원해서 이른둥이에게 기부할 수 있는 곳을 찾았죠.”


고맙게 받은 것을 기쁘게 돌려줘야 한다는 오성민 씨의 생각에 신상미 씨 또한 동의했다. 그들 부부가 1년 전에 겪었던 경험은 그렇게 선순환이 되어 또 다른 이른둥이에게로 전해졌다. 그냥 돈을 전달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돌잔치 때, 답례품을 없애고 각 테이블마다 작은 기부통을 놓아두는가 하면 한켠에 다솜이 작은 숨결 살리기 책자를 비치해 뒀다. 이른둥이가 뭔지, 인큐베이터가 어떤 건지, 그들을 돕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사람들이 직접 경험할 수 있기를 바라서였다.


“아내와 함께 세빈이의 인큐베이터에 있던 사진을 가지고 돌잔치 동영상을 만들면서 많이 울었어요. 그걸 사람들과 함께 보는 건 건강한 세빈이를 축하해달라는 의미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의 모든 이른둥이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표현이기도 했어요.”


바로 당신 곁에 있는 이 아이를 통해 나눔을 배우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게다. 세빈이의 태명이 ‘마음’이었던 것처럼, 모두가 마음을 나누고 보듬기를 소망하는 오성민&신상미 부부. 경험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들의 소박한 바람은 분명 다른 이의 서늘한 순간을 따뜻하게 데울 것이다. 마치 차디찬 공기가 조금씩 자리를 바꿔가며 데워지듯 그들의 선순환으로 또 다른 이른둥이가 이전과는 다른 삶을 거머쥐기를 기대해본다.

 

 

                                                                                                                                                                             ⓒ 오세빈

 

 지금은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오세빈아가는 지난 4월에 첫돌 잔치를 하고, 소중한 기부금을 이른둥이를 위해 기부하였습니다.


 

글. 우승연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