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둥이 기부자 송방주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어라
동등한 출발선을 위해 온몸으로 기부하다

 

 

 

“언젠가 김제동 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최소한 출발선은 같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태어나면서부터 환경 때문에 시작점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 다를 수밖에 없는 시작점을 동등하게 만들어주는 사회적 장치가 있기를 바라요. 그게 제가 그리는 세상이고 기부를 하는 이유입니다.”
왜 ‘기부’이고 어째서 ‘아름다운재단’이며 또 ‘이른둥이’인지를 묻자 주저 없이 ‘사회 정의와 평등’을 이야기하는 송방주 기부자. 나눔과 배려, 사랑이라는 온정 어린 감성보다 먼저 정의와 평등에 뿌리 내린 그의 기부 철학에서 힘이 읽힌다. 내 것을 나누는 데 방점을 찍지 않은 그의 태도가 수혜자의 수동성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주고받는 행위 모두에 능동성을 부여하는 가치관이라고나 할까. 이처럼 뚜렷한 기부에 대한 그의 소신. 그것은 ‘송방주’ 개인의 역사가 부단히 애쓰며 빚어낸 진주이다.

 

 

ⓒ 아름다운재단

 

생의 에너지를 기부하다
그의 기부활동은 2009년 여름을 맞이하면서 시작됐다. LG생활건강연구원으로 취직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돌아보면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기부를 꿈꿨으나 정작 실천으로 옮기진 못했다. 넉넉지 못한 일상이 발목을 잡고 있어서였다. 어쩌면 그래서 취직을 더 손꼽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송방주 기부자에게 취직은 자기 자신은 물론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건너야 하는 강이거나 넘어야 하는 산이었다.
“아름다운재단이 좋았던 건 기부 분야를 선택할 수 있다는 거였어요. 일시적인 시혜로 끝나지 않고 선순환이 가능한 구조이기도 했고요. 어디에 기부할까 고민하다 선택한 게 사회 정의와 평등과 맥이 닿는 세 군데였어요. 공익제보자,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소금창고’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주는 ‘공감’, 대학생들의 학비를 지원해주는 ‘미래세대발전기금’을 신청했죠. 입사하자마자 신청할 수도 있었는데 좀 게을렀어요(웃음).”
자신의 기부가 누구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 꼼꼼하게 챙기려고 매달 아름다운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고, ‘정기기부’를 하면 무관심해질까봐 손수 입금하는 ‘일시기부’를 선택한 송 기부자. 그토록 매 순간 깨어서 기부를 실천하면서도 자기 스스로를 게으르다고 지칭하는 그의 태도는 단순히 겸손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수년전에 있었던 가슴 아픈 가족사를 나름의 방식으로 확장시키려는 행동에 가깝다.
“아버지께서 2006년 말, 퇴직하시고 집안이 좀 힘들었어요. 다른 건 차치하고 저희 3형제의 대학등록금만 해도 부담스러웠죠. 빚과 이자가 늘어날 무렵, 대학교 4학년이었던 둘째 형이 세상을 떠났어요. 생활고와 학비, 거기에 취업 부담까지 더해져서…. 그나마 저는 이공계 장학금과 대학원생 조교장학금을 받고 다녀서 괜찮았는데 형은…. 그래서 여러 기부 중에서도 미래세대발전기금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요.”
돈이 갉아먹은 생의 기운이 야속했을 것이다. 해서 만약 그때 누군가 형을 다독였더라면, 조금만 힘내라면서 약간의 도움을 줬다면, 그리고 그 누군가가 다른 이가 아닌 송 기부자 자신이었다면 아마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하느라 속울음을 울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끌어안고 수십, 아닌 수백 번 2008년으로 되돌아가느라 취직 후 얼마간은 기부를 떠올리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도울 사람이 과거가 아닌 현재 혹은 미래의 누군가라는 걸 깨닫는 순간까지는 말이다.
“2009년 봄,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하고 나니, 어려운 가정 형편과 형의 죽음 때문에 둘러보지 못한 주변이 떠올랐어요. 꽁꽁 언 가슴으로 살아왔던 저는 그제야 주변의 다른 곳을 볼 수 있게 됐죠. 단지 돈 때문에 꿈을 펼치지 못하거나, 그로 인해 생을 마감하지 않기를 바라요, 진심으로.”

 

이른둥이가 이른둥이를 만나다


작년 12월, 희망산타 자원봉사를 지원할 때만해도 그는 이른둥이에 관심이 없었다. 봉사 활동을 하고 싶던 차에 자원봉사 모집 요강을 읽고 신청했을 뿐이었다. 솔직히 이른둥이보다 자원봉사자가 더 궁금했다. 기부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는 게 좋았다. 그들을 만나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경험하고 싶었다. 심지어 송 기부자 자신이 이른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른둥이의 치열한 삶을 한 번도 떠올리지 못했다.

 

 

ⓒ 아름다운재단


“제가 8개월 2.16kg으로 태어났거든요. 근데 인큐베이터에서 나온 이후론 건강했어요. 그래서 이른둥이와 그 가족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잘 몰랐던 거 같아요. 생각도 안했죠. 물론 금전적인 부담은 알고 있었지만. 제 때만 해도 지원도 없을뿐더러, 제가 셋째라서 의료보험 지원을 못 받았으니까요. 한데 그날의 경험이 저를 확장시켰죠.”
희망산타로 변신했던 2011년 12월 5일 이후로 그는 새로운 세상과 만났다. 뇌병변이나 시각장애 같은 후유증으로 고군분투하는 작은 천사들을 알게 됐고, 그로써 이른둥이의 삶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2년 1월, 자연스럽게 이른둥이를 후원하는 기부자가 됐다.

 

 

ⓒ 아름다운재단


“자원봉사라고 말하기엔 쑥스러워요. 일회성 행사인데다 재단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에 맞춰 약간의 노동력을 제공한 것뿐이니까요. 봉사라는 게 자신의 돈과 노력이 전제돼야 하는데 그건 아니라서 아쉬웠죠. 그래도 부천에 사는 서은이를 만날 수 있었던 건 좋았어요.”
뇌병변과 시각장애를 지닌 서은이를 통해 그는 삶의 경이로움을 경험했다. 한참 뒤처진 출발선에서도 이토록 밝을 수 있다는 게 희망처럼 느껴졌다. 사실 처음엔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몰라 한참을 헤매며 진땀을 뺐다. 그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이 희망산타 로고가 새겨진 헬륨풍선. 그것을 매개로 대화 아닌 대화를 나누며 그는 잠시나마 서은이와 온전히 함께 할 수 있었다.
“서은이를 비롯한 서은이 가족을 만나고 생명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되뇌게 됐어요. 돈 때문에 생명의 가치가 퇴색돼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더욱 공고해졌죠. 이른둥이에게 기부하게 된 결정적 계기이기도 해요. 다솜이 희망산타 같은 행사를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기를 바라는 건 그래서예요. 저처럼 참여를 통해 기부를 시작하게 될 사람이 분명 있을 테니까요.”

 

늘 깨어서 기부와 관계하다
기부를 하면서 일종의 채무를 벗은 느낌이라고 이야기하는 송방주 기부자.

 

ⓒ 아름다운재단


“소식지를 받아보고 제가 기부한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게 되는 게 참 좋아요. 더불어 다양한 소외계층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다행이고요. 지난번엔 1% 나눔 수프 행사에 참여했었는데 그런 자리를 통해 다른 기부자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기뻤어요. 여러 재능기부와 나눔기부 부스를 둘러보며 나도 뭔가 재능을 나누면 좋겠다 싶었죠. 생각뿐인 것들을 하나씩 구체화하면서 나누는 삶이 확장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일례로 그날 함께 참여한 송 기부자의 친구 역시 행사를 경험하고 기부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3년 가까이, 송 기부자는 온몸으로 기부라는 파이가 어떻게 커지는가를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기부의 액수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기부액이 얼마인가보다 더 중요한 건 기부자의 태도였다.
“대부분은 큰돈을 내는 게 아니잖아요. 작은 돈을 내는 거라서 스스로의 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모르죠. 그냥 잊어버리게 되고요. 그래서 저는 돈이 중요하긴 해도 그건 마음과 함께 일 때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무작정하는 게 아니라 그 쓰임새를 생각하며 기부를 한다면 더 의미 있는 순간을 경험하게 될 거예요.”

 

 

ⓒ 아름다운재단


기부자와 수혜자가 유기체적으로 관계를 맺어 그 에너지가 사회로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송방주 기부자. 그의 기부 출발은 분명 개인사로부터였으나 그 종착점은 미지수다. ‘1+1=2’라는 산술적 확장이 아니라 몇 배씩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이제까지의 행보로 가늠해 볼 때 확신할 수 있는 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것이라는 사실 뿐이다. 모두가 같은 시작점에서 출발해 지치지 않게 제 삶을 꾸릴 수 있도록 한껏 지지해 주리라는 따뜻한 추측만이 가능하다.

 

글. 우승연

사진. 김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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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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